본문 바로가기

브랜드/브랜드 스토리

루이 쉐보레, 굴곡이 많았던 화려한 인생 [2]

 

안녕하세요 토비토커 위저드아이언 입니다.

어쩔수 없이 두번으로 나누어지는 루이 쉐보레의 인생사, 그 두번째 스토리가 나갑니다!

 

다시보기 -> 루이 쉐보레, 굴곡이 많았던 화려한 인생 [1]

 

 

■ 화려한 성공


1910년 승승장구하던 윌리엄 듀런트가 은행채권단에 의해 GM에서 쫒겨난 그 해 루이 쉐보레는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오너가 퇴진하였다고 하나 고용주와 고용자의 관계였을 뿐이고, 루이 쉐보레의 뷰익 팀 레이서로의 명성은 여전했습니다.

루이 쉐보레, 뷰익 버그

[루이 쉐보레는 뷰익 버그로 인디 500을 석권합니다 1909년]


 

뷰익 버그

 

[지금 다시봐도 매력적인 레이싱카 뷰익 버그]
 

단지 윌리엄 듀런트만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만, 그 역시 GM에서 퇴출되었다고 자신의 전부를 내던진 자동차사업을 중단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시 투자자를 모집하고, 루이 쉐보레를 영입하여 재기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단, 이번에는 레이서로의 명성 뿐만아니라 엔지니어의 능력까지 같이 활용할 셈이었죠.  진정한 투톱의 회사를 꾸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1911년, 윌리엄은 루이의 이름을 내건 자동차회사 '쉐보레'를 탄생시킵니다.

 

 

쉐보레 카마로

 

[친숙한 대중적인 브랜드 쉐보레는 이렇게 1911년 탄생하게 됩니다 - 카마로 2010년]
 

설계와 개발 및 양산은 루이 쉐보레가, 경영은 윌리엄 듀런트가 하는 형태의 공동 창업이었는데요. 듀런트의 이름보다는 보다 과감히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쉐보레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지었던거죠.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한 윌리엄을 보면 그의 사업감각이 범상치 않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제가 사장이면 듀런트-쉐보레로 했겠지요. 듀런트쉐보레? 어래? 나쁘지 않은데요 -_-;;;)


그리고 쉐보레의 이름으로 출시된 첫 자동차. 클래식 식스. 루이가 구현하고 싶었던 자동차의 메카니즘을 충분히 적용한 첫 작품. 클래식 식스가 1911년 첫 선을 보이게 됩니다. 클래식 식스는 당시 경쟁모델인 포드 T 보다 크고, 무겁고, 빠르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로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알페온, 베리타스에 가까운 모델이었습니다.

 

 

클래식 식스

[쉐보레의 첫 작품 클래식 식스는 20개월동안 200만대를 생산 쉐비를 시장에 안착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엔진만 봐도 T실린더 타입의 6기통 엔진은 1950년대가 되기 전까지 쉐보레에서 가장 큰 엔진으로 기록될 정도였으니, 루이의 설계사상이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나 이 점때문에 클래식 식스는 윌리엄 듀런트의 컨셉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래서 루이의 몰락을 가져오는 결과를 불러오는 불효자가 되게됩니다.

 

 

다가오는 그림자와 추락하는 천재


윌리엄 듀런트가 가지고 있는 시장전략은 확고했습니다.

"포드를 따라간다"


당시 포드는 모델 T의 생산으로 자동차 시장의 혁신을 불러온 선구자였습니다. 컨베이버 벨트로 소품종 대량생산을 성공시켰고, 이는 더이상 자동차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습니다.

 

포드T

 

[합리적인 가격으로 대중을 파고든 포드T]

 

그런 그가, 고성능의 값비싼 자동차를 설계하는 루이 쉐보레와 마찰이 있었던건 어쩌면 필연적이었을런지 모릅니다. 어릴때부터 가난하게 살았던 루이 쉐보레에게 자동차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생계의 수단이었고, 정복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보다 크고 화려하고 강력한 자동차를 만들길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컨셉으로 탄생한 첫차가 바로 클래식 6 였던거지요. 당시로는 신기술인 4.9L T-Head 엔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L-Head 엔진보다 성능이 좋고 안정적이긴 했지만 복잡하고, 비싸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클래식 식스

 

[고급 대형차를 제작하던 쉐보레의 전략이 변경되며 두 설립자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 클래식 식스] 

때문에 첫 작품인 클래식6 부터 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판매 1년만인 2013년 윌리엄 듀런트는 루이 쉐보레를 공동 경영인에서, 개발 담당으로 좌천시켜버리는 악수를 둡니다.


결과론적으로 브랜드 '쉐보레'를 살리는 일이기도 했지만, 우수한 경영인을 잃어버리는 루이 '쉐보레'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루이 쉐보레는 탁월한 기술인이었지 경영인은 아니었거든요.


 

재기의 몸부림과 안타까운 결말


루이는 자신을 좌천시킨 쉐보레를 박차고 나옵니다. 이해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배신감도 느꼈을겁니다. 루이 쉐보레가 유럽으로 휴가를 간 사이에 일어난 전격적인 인사였으니까요.


자신의 디자인철학이 무시당한 그는 분명 증명하고 싶었을꺼고, 회사를 나온 이듬해 프롱트낙이라는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면서, 동시에 잠시 중단했던 레이싱 활동을 재개합니다.

 

루이스 쉐보레

 

[자신이 새로 설립한 프롱트낙 레이팅카를 몰고있는 루이 쉐보레 1919년]

예상하시겠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1920년대 레이싱대회를 석권하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프롱트낙도 꾸준한 성장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갔지만, 승승장구하는 쉐보레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였지요


게다가 항공산업으로의 무리한 사업확장 시도, 1929년 닥친 경제 대 공황으로 인해 회사 부도와 함께 거리로 내몰리게 됩니다. 

 

 

프롱트낙

 

[자동차 회사였던 프롱트낙이 항공산업으로 전환하면서 쉐보레는 파산하게 됩니다]

그에게 닥친 어려움은 그의 큰아들이 28세에 병사하게 되는 비극적인 가족사를 만들게 되는데, 자신의 무기력함에 괴로워 했다고 하는군요. 또한 그 역시 뇌졸중과 폐렴으로 말년에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다 병사하게 됩니다.


파도가 있는 화려한 인생을 살다간 루이 쉐보레. 현재 인디애나폴리스에는 그의 레이싱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있고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포기란 없다 (Never Give Up)"

Louis Chevrolet

1878–1941

 

루이스 쉐보레 기념비

 

[인디애나폴리스에 세워져있는 루이 쉐보레 기념비 'Never Give Up']


쉐보레를 창립하면서 사라져간 스타이자 천재. 불운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있어 지금의 쉐보레가 존재합니다.


이상 토비토커 위저드아이언이었습니다.

 



P.S.  보통 새드앤딩은 피하는 편인데, 피할 수가 없네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