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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레이싱

전설이라 불린 레이서 - 아일톤세나 [2] '미스터 모나코'


전설이라 불린 레이서 - 아일톤세나 [2]  '미스터 모나코'


안녕하세요 위저드 아이언입니다.

 영암만 해도 그렇지만 보통 레이싱 서킷은 도심에서 먼 외곽에 떨어져있습니다. 공간확보의 문제, 높은 땅값의 문제들 때문에 그런데, 이 공간이라는게 생각보다 커서 최근 동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평창의 스키장 한개는 우습게 넘어가는 사이즈를 가지고 있습니다. 흥행에 가장 중요한 관객유치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접근성'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지요. (평창에 고속도로를 놓고, 고속철도를 다니게 하는것도 접근성과 연관있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홍보효과를 높일 겸 레이싱을 서킷에서 하지 않고, 도심 한 가운데서 치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레이싱 서킷도 스키장 만큼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모나코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로부터 유명 관광지 였던 특수성과, 흥행을 노린 FIA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꽤 오래전부터 유명 레이싱 경기를 치뤄온 곳으로 유명한데,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벌써 100년이 다되어 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군요. 게다가 코스의 역시 역사만큼 높은 난이도로 오버테이크(추월)이 까다로와 레이서에게도 악명높은 서킷중 하나입니다. 


            일반 도로를 막아 서킷으로 사용하는 몬테카를로(모나코) GP는 난이도 극강(!)을 자랑합니다. 

 무리하게 추월을 하다 사고도 많이 나고 (사망사고가 몇 건 있습니다.) 해서 레이서들이 몸을 사리고. 예선 1등이 결승 1등을 하는 재미없는 코스가 되어버린 모나코 서킷. 그런데 1984년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한명이 이 악명높은 서킷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 자유롭게 달리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모든 관중들이 이 모습에 놀라며 열광하기 시작하지요. 네, 그는 바로 아일톤 세나였습니다. [지난 포스팅 보러 가기]

미스터 모나코 (Mr. Monaco)

  1960년생인 세나는 브라질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산층이 아닌 꽤 부유한 가정환경이었지요. 때문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모터레이스에 그리 큰 부담 없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친누나인 비비안느 세나로 부터 선물받은 첫 카트는 네살 때였는데 (농장주인 아버지가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릴때 부터 운전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큰 흥미를 보인 세나는 재미(!)삼아 카트를 꾸준히 타기 시작했고, 첫 카트대회인 남미 카트 챔피언쉽에서 열 세살의 나이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주행영상이 편집본으로 돌아다니곤 하는데, 코너보다는 직선구간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는걸로 봐서는 이미 슬립스트리밍(?)을 잘 이용했나 봅니다. 역시 천재(!)는 타고나는건가요.
 

                                            카트 챔피언쉽에서 코너 진입전 드리프트중인 세나


  어린 세나의 천재성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데, 잠깐 새어버렸네요 ^^; 이후 세나는 포드포뮬러 1600과 2000에서의 우승을 바탕으로 F1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이런 세나에게 F1에 입문하기 전까지 그의 모든 유년시절은 레이싱과 같이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독 승부근성이 강했던 세나에게 있어 어찌보면 레이스는 인생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되어버린거지요.

                  레이싱은 열아홉 풋풋한 소년의 인생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1979년 포드2000]

  그래서 그런지 유독 세나의 드라이빙은 과감하고 모든걸 내던지는 듯한, 조금은 무모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도 성격탓에 그런 드라이빙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이런 세나의 레이싱 스타일은 모나코 GP의 서킷 스타일과 만나서 영화와도 같은 경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역전을 눈앞에 두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러나 관중들에게 천재성을 강하게 각인 시켜주었던 1984년 모나코 GP를 시작으로, 팀 작전과 레이서의 능력으로 레이싱계의 엄친아 엄친팀 윌리엄스를 눌려버린 1987년 모나코 GP 첫 우승. 이후 이 천재 드라이버는 장장 6년에 걸친 모나코 경기를 우승으로 가져가며 또하나의 별명을 갖게 됩니다. ' 미스터 모나코'

                  모나코 GP 첫 우승을 기록한 1987년 우승 트로피를 안고있는 세나 [1987년 모나코 GP]

 1987년 세나가 모나코 첫 우승을 가져갈 당시 세나와 로터스팀의 레이싱카는 윌리엄스의 그것에 비해성능이 절대 열세에 있어 만셀이 1,2위를 쓸어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윌리엄스 팀의 FW11라 불리는 이 머신은 엑티브 서스펜션이라는 신기술을 완벽하게 적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다른 팀에 비해 보다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스 팀은 평균 2초의 랩타임을 단축할 수 있었고 실제 1년전인 1986년 시즌에 윌리엄스 팀은 총 16번의 경기중 10번의 우승을 가져가는 막강한 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나코 만큼은 로터스도 세나도 한번 해볼만 장소 였습니다.

                                       윌리엄스의 FW11은 당시 가장 빠른 성능의 머신이었습니다.

  모나코는 서킷 특성상 한곳의 고속코너 외에는 모두 저속의 테크니컬 위주의 코너입니다. 이는 윌리엄스의 엑티브 서스펜션의 효과가 보다 덜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래서 해볼만하다고 판단한 로터스팀과 세나는 모나코 GP를 위한 승부수를 던집니다. 그 승부수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아슬아슬할 만큼의 딱 맞는 연료를 적재하여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모험을 감행하는 전략과  (당시에는 추가주유를 위한 피트인 규정이 따로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타이어를 한계까지 사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관련 포스팅 보러 가기]

           세나와 로터스팀은 우승을 위한 도박적인 작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림 - 1987년 모나코 GP]

 사실 이런 전략은 무모하리 만큼 과감한 전략이었습니다. 혹시 잘못된 계산으로 연료가 부족하다면 그대로 경기를 포기해야 했고, 타이어가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지 못해 하위권으로 처질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나는 한계상황에서 레이싱을 하는데 익숙했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경기 내내 연료과 타이어를 잘 관리하며 달리던 세나는다른 선수들이 타이어의 마모로 인해 피트인 할때 오직 홀로 달리게 되고, 경쟁자의 프레셔(압박)에서 벗어난 세나는 마음껏 달려 최대한 간격을 벌려놓습니다, 그리고는 43랩때 선두그룹 제일 마지막으로 피트인 하여 타이어를 교체하게 됩니다.

팀과 세나는 타이어의 장점을 살려 한계까지 사용하는 작전을 쓰게됩니다. [굿이어가 마크가 선명한 로터스 99T] 

  예상대로 다른 선수보다 가볍게 달릴 수 있었는데다가, 중요한 시점에 혼자 달릴 수 있게 된 세나는 2위와의 거리를 멀찌감치 벌려놓게 됩니다. 피트아웃 후 코스로 접어 들었을 때 2위였던 피케가 무서운 속도로 세나를 따라잡아 가지만 간격을 좁힐 수없었습니다. 결국 세나는 그대로 결성선을 통과하여 모나코에서의 첫 우승을 맛보게 됩니다.   

  이는 세나의 네번째 우승이자 모나코에서의 첫 우승으로 87년부터 98년을 제외한 모든 모나코 경기를 싹슬이해 미스터 모나코의 괴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84년 모나코 경기과 더불어 최고의 경기중 하나로 꼽히는 87년 모나코 GP는 F1이 단지 성능만이 아닌 코스에 따른 작전에 의해서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경기로도 유명하지요. 
 

        재빠르게 1위로 코스인한 세나는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합니다.[1987년 노란색이 선명한 로터스 99T]

 다음 링크를 보시면 당시 중계된 방송의 동영상인데, 피케가 세나뒤를 점점 따라잡아가는 장면과 앵커가 흥분을 감추지 못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지요. 현장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동영상 보러 가기] 나중 이야기지만 너무 힘든 경기였던지 경기 직후 탈진으로 인하여 구토를 했다고 하는군요. 

 이후 멕라렌 팀으로 이적한 세나는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하며, 모나코 GP에서만 5회연속 우승을 달성하여 미스터 모나코의 명성을 이어가게 됩니다. 잘 알려진 마이클 슈마허죠차 처음 은퇴전까지 총 5승을 기록하여 모나코에서 세나의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어지지 않은채 남아있습니다.

                          '미스터 모나코'의 6회 우승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어지지 않고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Travelpod http://www.travelpod.com
Sutton-images http://sutton-images.com
YallaF1 http://www.yallaf1.com/
Wikipedia http://it.wikipedia.org
F1DB http://www.f1db.com
Documentary 'Tribute to Ayrton Senna Racing is in my blood'

세나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상 토비토커 위저드아이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