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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레이싱

전설이라 불린 레이서 - 아일톤세나 [6] '탐부렐로의 비극'

1994년 5월 1일 오후.

산마리노 GP의 결승을 앞두고 있던 이몰라 서킷의 분위기는 뒤숭숭 했습니다. 
전날 R. 라트젠버거(Roland Ratzenberger)가 코스이탈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4년 시즌을 처음으로 F1에 진출한 신인이었던 라르젠버그는
전날 토요일에 열린 예선(퀄리파잉) 에서 머신이 부서지면서 사고를 당했는데
긴급 후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심하게 부서져있는 라트젠버그의 머신. 이 젊은 영건은 데뷔 첫해 안타깝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예선을 마무리 하기위해, 머신 이상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계속 한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몰라 서킷의 연속 헤어핀 코스인 빌뉴브 커브를 300km/h 로 접근하는중 
다운포스를 이기지 못한 노즈콘의 프론트윙이 머신의 아래로 빨려 들어가면서 라트젠버그는 컨트롤을 잃었고, 
그대로 콘트리트 방호벽을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동영상 보러가기]

                        사고 당시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산산조각나는 라트젠버그의 머신

젊은 오스트리아 드라이버의 죽음은 각 팀들을 충격으로 빠져들게 하였으나,
사고의 원인이 경기 운영에 따른 것으로 판단되어 예정대로 결승은 진행되게 됩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미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은 상태였지요.

모든 드라이버들은 경기 속행에 대해 동요하고 있었고,
세나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라트젠버거의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는 편지를 쓸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치프 닥터인 와트킨즈가 세나에게 '당신은 이미 가장 빠른사람'이라고 말하며 경기 포기를 종용할 정도로
불안정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치프 닥터조차 세나의 경기출전을 만류할 정도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였는지 세나는 다음날 결승전이 치뤄지기 전 동료 드라이버들을 찾아다니며, 
FIA에게 안전규칙 강화에 대한 논의를 하기위해 위원회를 꾸리는데 시간을 쏟게 됩니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진행되는 경기 결승 출발 직전.
스타트을 위해 각 팀의 머신들이 그리드 앞에 정열합니다.
불안한 기색을 애써 감춘채, 곧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녹색등이 점등되고
일제히 머신들은 앞으로 튀어나갑니다.

이것이 세나의 마지막 경기가 될줄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채 말이지요.

          전날 일어난 큰 사고에도 불구하고 1994년 5월 1일 산마리노 GP의 결승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그리곤 시작과 동시에 큰 사고를 암시하는듯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베네통의 J.J. 레토가 엔진스톨로 출발하지 못한채 그리드에 머물러 있는 바람 일어났는데, 이를 보지못한 후속차량들이
연이어 추돌하게 된 것이지요. 사고처리를 위해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세이프티카 투입으로 경기는 곧 속행되면서
서서히 서킷에 어둠의 그림자가 밀려들게 됩니다. 

당시 F1의 세이프티카는(오펠 벡트라)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뒤따르는 머신의 타이어는 쉽게 식어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타이어의 온도는 코너를 빠르게 돌아나가기 위한 그립 (접지력)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에
경기전 브리핑 당시 이미 개선요구가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질의가 있은 바로 뒤 우려한 상황이 재연되게 됩니다.

       사고의 원인중 하나로 지목되는 타이어 온도 문제는 세이프티카에 대한 인식의 부재에서 일어납니다.

세이프티카의 투입으로 모든 머신들의 타이어는 식어갔고,
보통 때라면 감각적으로 대응하여 주행을 할 수 있는 드라이버들이었지만,
연이은 사고로 인해 분위기는 혼란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모든 드라이버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금요일 예선때 큰 사고를 당한 신인 드라이버 R. 바리첼로는 부상을 이유로 경기를 포기하기도 했지요. 
[동영상 보러가기]

                                   유난히도 큰 사고가 많이 났던 1994년 산마리노 GP.  
                    또 다른 신인 R.바리첼로도 예선 경기중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시 재개된 경기.
경기 시작 후 선두로 나선 세나는 뒤에 마이클 슈마허를 달고 내리 6랩을 평소보다 빠르게 돌아나갑니다.
마치 타이어 컨디션을 잊은듯, 여섯바퀴중 한바퀴는 세번째로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며
슈마허를 떨쳐내기 위해 피치를 올립니다.


그리고 나타난 운명의 탐부렐로 코스.
고속 코너로 유명한 이곳을 이상하리 만큼 평소보다 빨리 돌아들어가던 세나는
마치 불나방이 불을 보고 달려드는듯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코너를 그대로 이탈하고 맙니다.

300km/h의 속도를 미쳐 줄이지 못한채 20여미터 가량 코스를 이탈한 후 그대로 콘크리트 벽에 충돌했는데
충돌 즉시 앞 타이어가 튕겨나갔고, 한참을 더 미끄러져 나간 후에야 멈출 수 있었습니다. [동영상 보러가기]

         탐부렐로 코스를 돌아나가지 못하고 세나는 300km/h 의 속도로 방호벽과 그대로 충돌하고 맙니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충돌로 인해 심하게 부서졌을줄 알았던 머신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였고
세나의 헬멧이 뚜렷이 확인될 정도로 콕핏은 큰 손상을 입지 않아
관중들은 평소처럼 툭툭 먼지를 털며 머신에서 걸어나오는 세나를 기대하였습니다.

           사고 직후의 사진. 머신은 크게 손상되지 않은듯 했으나. 세나는 스스로 걸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세나는 콕핏에서 머리를 툭 떨어뜨린채 걸어나오지 못였습니다.
경기중단 직후 도착한 오피셜들은 세나의 부상이 심각함을 인지하고는 세나를 내버려둔채 메디컬팀을 긴급히 호출했으나
결국 스스로 걸어나오지 못한 세나는 응급차에 실려 헬기편으로 긴급 후송되었습니다.
그리곤 이게 관중이 본 세나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1994년 5월 1일 이몰라 서킷에서 세나는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있는 사고 원인과 그 뒷 이야기들 마지막으로 세나의 레이싱 스토리 최종화가 포스팅됩니다.

이상 토비토커 위저드 아이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