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경주의 월드 챔피언쉽이라고 불리는 F1은 이전에도 수많은 자동차경주가 있었지만 F1이 등장한 뒤 비로소 공식적인 모터스포츠의 국제 대회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유럽지역에서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지구촌 전체를 무대로 하고 있을정도로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F1.
그렇다면 F1과 같은 자동차경주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리고 F1이 지금처럼 사랑을 받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F1 그랑프리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F1의 기원은 크게 보면 지난 1906년 6월 26~27일 프랑스 르망 근처에서 '프랑스 오토모빌 클럽'이 주최한 프랑스 그랑프리(GP)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자동차 경주장은 삼각형으로 생겼고, 한 바퀴의 거리가 65마일(약 150km)이었습니다. 굉장힌 규모가 컸던 당시의 자동차 경주장은 한 바퀴를 도는데만해도 한 시간 가량 걸릴정도! 하루에 고작 6바퀴만 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규모가 컸던 자동차경주장에서 32개 팀이 출전하는 경기가 열렸었는데요. 경합을 벌인 끝에 르노 소속인 헝가리 출신 페렝씨쯔(Ferenc Szisz)가 1,260km를 달려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 르노 소속인 헝가리 출신 페렝씨쯔(Ferenc Szisz) >
이후 그랑프리의 열기는 이태리와 벨기에, 모나코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여러 그랑프리가 독자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독자적으로 그랑프리가 생겨나다보니, 각국의 모터스포츠 규정이 달라 국제적인 레이스로는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특별한 경주차 규정이 없었고, 레이스 자체도 매우 간단했습니다. 좌석의 숫자와 휘발유, 증기기관 등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단순히 클래스를 나눌뿐이었습니다.
푸조, 메르세데스 벤츠, 피아트 등이 활약한 1910년대 그랑프리는 1차세계대전으로 4년간 공백기를 거치면서 1920년대를 맞았습니다. 피아트와 알파로메오, 부가티 등이 활약한 1920년대 그랑프리는 A.아스카리, T.누보랄리 같은 위대한 드라이버들이 그랑프리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생전에 '레이스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던 엔초 페라리도 당시에는 알파로메오의 드라이버로 활약했습니다.
< '레이스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던 엔초 페라리 >
유럽 전역에 전쟁기운이 감돌던 1930년대에는 독일 정권을 잡은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자동차 경주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포르쉐 박사에 의해 완성된 새로운 수퍼차저는 성능이 매우 뛰어나 벤츠와 아우토우니온의 경주차들은 유럽 레이스를 휩쓸며 '은빛 화살(Silver Arrow)'이라는 별명은 얻었습니다.
< '은빛 화살(Silver Arrow)'이라 불리던 벤츠 >
1939년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랑프리는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잠자고 있던 경주차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그랑프리를 열게됩니다. 이듬해인 1947년에는 국제자동차공인클럽협회(AIACR)에서 발전된 세계자동차연맹(FIA,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I' Automobile)이 정식으로 발족하고 그랑프리의 새로운 규정, 바로 포뮬러1(F1)을 만들었습니다. 'F'는 규정을 뜻하는 포뮬러(Formulae). '1'은 최고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FIA는 이전 유럽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수많은 그랑프리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모았습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경주를 아직도 '커다란 행사'기 어원인 그랑프리(Grand Prix)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실제 F1 GP가 열린 것은 3년 뒤인 1950년 영국 실버스톤 GP부터였습니다.
< 1947년 F1 그랑프리 >
1950년 F1 첫 드라이버 챔피언은 알파로메오를 몬 주제페 파라나였습니다. F1 초창기에는 패전국 독일의 위축으로 알파로메오나 페라리, 마세라티 등 이태리세가 두드러졌습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로터스, BRM, 쿠퍼, 반월, 브라밤 등 영국세가 위세를 떨쳤습니다. 64년 F1에 데뷔한 혼다는 이듬해 멕시코 GP에서 일본차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출격을 물고 왔습니다. 67년 벨기에 GP에서는 미국차로는 처음으로 덴 거니가 몬 이글이 우승을 차지하는 등 60년대의 F1은 변화와 이변이 많았습니다.
F1은 로터스, 페라리, 브라밤의 시대를 거치며 1974년 맥라렌이라는 명문팀을 탄생시켰습니다. 77년에는 F1 최초의 터보 엔진이 르노에서 등장했습니다. 컴팩트한 엔진으로 높은 출력을 쏟아낼 수 있어 87년까지 터보의 전성기가 계속되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맥라렌, 윌리엄즈, 페라리 세 팀이 주축이 되어 F1을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 1947년 탄생한 팀 맥라렌 >
그 후, 르노의 퇴진으로 페라리가 너무 오랫동안 독주하다보니 점차 F1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이후 기업 광고가 크게 줄어들고, 스폰서를 모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자 FIA는 과도한 재정부담으로 팀과 메이커가 F1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F1 활동비용을 크게 줄일 개혁을 발표합니다. 특히 페라리의 독주를 막기 위해 2005년에는 예선과 본선에서 같은 타이어와 엔진을 사용해야 된다는 규정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새 규정은 르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타이어 내구성면에서 페라리의 브리지스톤보다 르노의 미쉐린이 앞섰기 떄문입니다. 결국 르노는 2005, 2006년 연속 양대 타이틀을 거머쥐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 2006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르노 >
그리고 2006년에는 드디어 F1 한국 그랑프리가 개최 되었습니다. 일본(1970년), 중국(2004년)에 이어 한국에도 F1 그랑프리가 개최됨으로써 세계 자동차 생산 10위권 국가에서는 모두 F1 유치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수많은 자동차경주가 있었지만 F1이 등장한 뒤 비로소 공식적인 모터스포츠의 국제 대회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F1은 초기에 주로 유럽지역에서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지구촌 전체를 무대로 하고 있는데요.
그랑프리가 시작된 1950년에는 연간 7라운드가 열렸으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연간 10~11라운드로, 1970년대에 17라운드 이상으로 경기가 늘었습니다. 현재는 개최국 사정에 따라 매년 17 ~ 19라운드가 치러지고 있는데요. 이것을 계산해 보면, 대회 기간인 3월부터 10월 사이 8개월간 평균 2주에 한 차례 꼴로 쉬지 않고 레이스가 열리는 셈입니다.
F1 한국 그랑프리 개최 이 후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F1.
F1의 역사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았는데요. 1906년에 프랑스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매년 그랑프리가 열리는 지금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F1 그랑프리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흥미로워지는데요. 지금처럼 계속해서 F1이 세계의 관심과 사랑속에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이상, 지엠대우톡의 토비토커 나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