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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브랜드 스토리

루이 쉐보레, 굴곡이 많았던 화려한 인생 [1]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인사드리는 토비토커 위저드아이언 입니다.


쉐보레의 이름이 루이 쉐보레라는 최초 창립자에서 나온 사실은 많이들 아실겁니다. 작년이 쉐보레 창립 100주년이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레이서로, 경영자로 화려한 인생을 살다간 그의 인생을 잠깐 엿볼까 합니다.

 

쉐보레 100주년


화려한 인생 화려한 발자취


루이 쉐보레가 윌리엄 듀런트와 '쉐보레'를 설립한건 그의 나이로 만 33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제가 셀러리맨 생활하고 있는 나이에 루이는 자동차 회사를 만들었지요. 물론 대대손손 부유했던 집안의 아들이었다면 충분히 그럴수 있겠지만, 루이가 가난한 시계공의 둘째아들 이었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습니다. -_-;;

 


루이쉐보레

 

[루이 쉐보레 (Louis Chevrolet) 1878 - 1941]

 

 

가난한 루이 쉐보레가 불혹의 나이가 되기도 전에 거대 자동차 회사의 사장님 자리에 오르게 된 데에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화려한 손재주와, 이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레이서로서의 명성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1902년 피아트와 함께 시작된 그의 레이싱 인생은 포텐이 크리티컬(!)로 터지기 시작해 데뷔 3년이 되던 1905년 벤더빌트 대회에서 프론트휠 과 액슬이 파손되는 사고에도 불구하고19대중 10위의 성적을 올리게 되는데, 쉐보레라는 거대 자동차 메이커의 역사가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는 순간이었지요.

 

 

루이쉐보레

 

[Fiat 소속으로 Vanderbilt 컵에 출전한 루이쉐보레 (16번)의 역주장면 1]

 

 

이민자들의 스타


루이 쉐보레는 스위스 출신 이민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킨 유명인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11살이 되던해 학업을 포기하고 자전거 수리공을 선택하였고, 뛰어난 손재주를 바탕으로 자동차회사로 진출해 결국 레이서로서 성공을 이룹니다.


가난했지만, 맨손으로 시작했고 배우지 못했지만, 노력으로 성공한 그의 이러한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민자 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충분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사건의 연속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것과 같아서 그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하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루이쉐보레

 

[Fiat 소속으로 Vanderbilt 컵에 출전한 루이쉐보레 (16번)의 역주장면 2]

 

 

그야말로  우연히 그가 미캐닉으로  정비했던 피아트 90Hp를 탈 기회가 생겼고,  또 우연히 트랙 최고기록을  세우게 되었으며,

때문에 우연히 레이싱 출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때마침 포드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대량생산에 성공하였고 (포드T 1905년), 자동차 산업이 폭팔적으로 성장하여 각종 레이싱 대회가 우후죽순 열리게 되었습니다.

 

 

포드 생산라인

 

[포드의 컨베이어벨트 생산 방식은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불러옵니다. (포드T 생산라인 1910년대)]

 

 

이런 우연이라고 볼 수 없은 연속적이 사건과 시대적 배경으로 루이 쉐보레는 1905년 벤더빌트를 시작으로 크고작은 대회(Olfiled racing, New York ACA)에서 우승을 하며 일약 인기스타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리고 엔지니어로서의 실력과 그가 가진 대중성에 주목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 불세출 천재들의 만남


윌리엄 듀런트는 1904년 어려운 재정상태에 있던 뷰익을 인수하여 이를 발판으로 1908년 GM을 설립한 창립자이자 오너였고 전문 경영인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약 5,00여개의 중소 자동차 제조사가 경쟁하고 있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의 시대였는데, 윌리엄 듀런트의 등장으로 GM 설립과 함께 평정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무한 인수와 합병을 바탕으로 GM의 덩치를 불려간 모습은 감히 경영의 천재라 불리는 그의 능력이 돋보였다고 해야겠지요.

 

마차산업

 

[마차산업은 곧 자동차산업으로 연결됩니다. 윌리엄 듀런트의 Durant-Dort Carriage 브로셔]

 

 

사실 30대에 미국 최대의 마차 회사(Durant-Dort Carriage Company) 일궈냈을 정도로, 윌리엄 듀런트의 경영능력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무리한 경영으로 GM에서 쫒겨났다는건 또 다른 함정이구요.


그런 그가 뷰익에 루이 쉐보레를 영입하며 손을 잡은건 당연히 일대 사건이었을겁니다. 경영천재와 엔지니어(레이싱)의 천재가 만나다니요.

 

 

쉐보레, 듀런트

 

[두 천재의 만남으로 자동차 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좌-쉐보레, 우-듀런트)]


 

윌리엄 듀런트는 캐딜락인수를 마무리하며, 루이 쉐보레는 1909년과1910년 인디애나폴리스의 Indy500 우승 준우승을 휩쓸며,

뷰익과 GM은 명실상부한 자동차 명가로 자리잡게 됩니다.

 

루이 쉐보레 인생 엿보기는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이상 토비토커 위저드아이언이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