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트랜스포머>
녀석의 이름은 르망이였다. 그리 번듯한 몰골은 아니었다. 조수석 쪽 문이 찌그러져 있었다. 범퍼도 성한 곳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10만 킬로미터를 주행한 뒤라 엔진도 지칠 데로 지쳐 있었다.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에 심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기백만큼은 새 차 부럽지 않았다. 르망이와 함께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었다. 힘과 연비의 현장인 지리산 노고단을 오를 때 르망이한테 처음으로 전우애 같은 게 느껴졌다. 정동진 앞바다에서 르망이와 함께 화보도 찍었다. 늦은 새벽 가도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광양만을 홀로 가로지를 땐 르망이 덕분에 절대 고독을 잊을 수 있었다.
솔직히 르망이를 타고 여자를 꼬시긴 어려웠다. 색이 바랜 은회색 차체로 다가가 내 여드름 자국 투성이 얼굴을 들이밀면 오던 여자도 도망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르망이한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자동 창문이 아니었다. 르망이는 스위치만 누르면 스르륵 내려가는 멋진 창문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도 차를 세우고 말을 걸려면 낑낑 거리며 손잡이를 십여 차례 돌려야 했다. 그때 쯤이면 예쁜 여자는 저 멀리로 지나가고 없었다. 수동 창문을 자동 창문처럼 스르륵 여는 연습을 수백번씩 연습했다. 실수로 차에 탄 여자들은 하나 같이 기겁을 했다. “이거 수동이었어?!”
첫 차 얘기다.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자동차가 만들었던 르망이 첫 차였다. 르망은 한때 한국 도심지 도로를 주름잡던 차였다. 르망은 잊지 못할 첫 사랑이었다. 틈만 나면 차체를 어루만져주며 사랑을 나눴다. 돌이라도 튀어서 흠집이라도 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르망이를 타고 함께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급기야 르망이라는 이름도 붙여줬다. 르망이는 첫 사랑이었고 전우였고 동지였으며 형제였고 애인이었다.
인간은 특이한 동물이다. 인간은 사랑을 하고 싶어서 안달내는 동물이다. 사랑할 사람이 없으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한테 정을 준다. 인간이 특이하다 못해 기이한 건 생명이 없는 존재도 사랑할 수 있어서다.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 버티다 배구공과 사랑에 빠진다. 배구공의 이름은 윌슨이다. 섬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톰 행크스는 윌슨과 생이별을 한다. 톰 행크스는 윌슨이 바다 저 멀리로 떠내려가는 걸 넋을 놓고 지켜본다. 형제였고 애인이었던 윌슨을 잃은 톰 행크스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인간은 배구공조차 사랑할 수 있다.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다. 생각보다 많은 인간들이 자동차와 사랑에 빠진다. 인간은 차가운 기계조차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기계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굉음을 내고 달리고 우회전하고 유턴한다면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그 기계를 타면 기계의 물리적 움직임까지 똑같이 느낄 수 있다면 이미 그 기계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적잖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자동차를 사람처럼 대한다. 멀쩡한 어른들이 자기 자동차를 애마라고 부른다. 분신처럼 아껴주는 경우도 많다. 애칭도 있다. 어쩌면 이런 자동차 사랑은 DNA 염기배열 안에 새겨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아이들이 차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아빠씽씽이니 엄마빠빵이니 해가면서 자동차를 친구처럼 대한다.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어른보다 차종도 더 잘 구분한다. 인간은 참 특이한 동물이다.
<트랜스포머>는 자동차에 환장하는 특이하고 기이한 인간 본능에 관한 영화다. 차고의 자동차가 사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발랄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그저 기계 덩어리일 때도 자동차를 사랑했다. 정말 생명이 있다면 자동차와 같이 잘 태세였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 <크래쉬>에는 생명이 없는데도 자동차와 섹스를 하는 남녀가 등장한다. <트랜스포머>의 오토봇들처럼 자동차가 살아 움직인다면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이 된다. 자동차와 대화도 하고 모험도 즐길 수 있다. 이제까지 인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대화를 했던 말 좀 통하는 자동차는 <전격Z작전>의 키트 뿐이었다. <트랜스포머>는 말하는 자동차의 계보를 다시 썼다. 자동차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트랜스포머>가 자동차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건 단지 말하고 변신해서가 아니었다. <트랜스포머> 1편에서 샤이아 라보프가 연기한 주인공 샘 윗윅키의 첫 차는 낡아빠진 쉐보레 카마로다. 카마로는 상처 투성이에 내상 투성이다. 그래도 샘은 카마로가 좋다. 범블비라는 이름도 붙여준다.
샘은 범블비를 사랑한다. 범블비가 오토봇이란 사실이 밝혀지고 인간형 로봇으로 트랜스폼하기 전에도 샘은 범블비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샘도 가끔은 범블비가 부끄러웠다. 특히 예쁜 여자들 앞에선 범블비를 감춰두고 싶어했다. 그런 샘의 마음은 범블비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된다. 인간은 자동차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연민할 수도 있다.
자동차가 변신한다는 황당무계 이야기에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었던 건 오토봇들의 멋진 변신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샘이 가진 범블비에 대한 애증에 공감해서였다. 녀석 밖에 없지만 녀석 밖에 없는 처지가 부끄럽다. 사실 이런 마음은 평범한 자동차 소유주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느껴봤을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지만 현실은 르망인 상황 말이다. 그때 범블비와 르망이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범블비와 르망이를 타는 자신이 처량하다. 그런 처량한 감정을 범블비와 르망이한테 투사한다. 아무 죄 없는 범블비와 르망이를 미워한다. 그래놓고 또 미안해진다. 그건 범블비나 르망이한테 미안한 게 아니다. 자기 자신한테 미안한 기분이다. 인간은 그렇게 차한테 정이 든다. 차가 살아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건 자동차와 자신을 동일화하는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잘 자란 어른도 르망을 르망이라고 부르게 된다. <트랜스포머> 1편은 딱 그 정서를 잡아냈다. 자동차한테 정서적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트랜스포머> 2편과 3편은 이걸 놓쳤었다. 샘은 오토봇 자동차들과 지구를 구하고 또 구한다. 오토봇들은 미군과 협력해서 지구 방위에 나선다. 우뢰매 수준의 상상력이었다. 멋진 자동차들의 향연은 볼거리였다. 2002년 단종됐던 쉐보레 카마로는 어느새 세련된 5세대 카마로로 다시 태어났다. GM의 브랜드인 GMC의 톱킥 C4500 픽업 트럭이 아이언하이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한국GM의 간판 경차인 쉐보레 스파크도 스키즈라는 이름의 오토봇으로 등장했다.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GM의 또 다른 경차인 쉐보레 트랙스도 머드프렛이라는 오토봇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등장한 페터빌트379 트럭이 압권이었다. 트럭계의 명차로 불리는 페터빌트379는 대당 가격이 1억6000만 원이 넘어간다. 이런 차들 속에서 범블비는 오히려 존재감이 없다 싶을 지경이었다. 샘과 범블비의 관계도 약해졌다. 허름하고 별 볼 일 없는 차한테 느껴졌던 애정과 연민이 옅어지면서 <트랜스포머>는 변신과 전투가 반복되는 지루한 전쟁 영화에 가까워졌다.
<트랜스포머> 4편은 살짝 1편의 정서로 돌아간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주인공 케이드 예거는 아저씨다. 차를 너무 사랑해서 차고에 고물차를 잔뜩 세워놓고 고치고 만지는 흔한 특이한 인간이다. 케이드 예거는 고물 트럭 한 대를 주워온다. 평소 습관이다. 케이드 예거의 딸 테사 예거는 그런 아빠가 못 마땅하다. 잔소리를 계속한다. 케이드 예거는 망가진 고물 자동차를 어르고 달랜다. 엔진을 고쳐주고 부서진 곳을 만져준다. 길 잃은 유기견을 구해주는 심정이다.
고치다보니 이 고물 트럭한테 애정이 느껴진다. 고치다보니 이상한 점들이 계속 발견된다. 온 몸이 벌집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다 총알 자국이었다. 차체 이곳 저곳에서 총알과 포탄들이 나온다. 케이드 예거는 결국 트럭을 고친다. 그러자 트럭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고물 트럭은 부상 당한 옵티머스 프라임이었다. 오토봇의 대장이자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말이다.
<트랜스포머> 4편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는 정의의 수호자 오토봇들마저 인간의 미움을 받는 시대를 그린다. 악당 디셉티콘과 시카고에서 벌였던 전투 탓이다. 오토봇들은 디셉티콘을 물리쳤지만 인간들은 오토봇 탓에 자꾸만 악당 로봇들이 지구를 침공한다고 여긴다. 오토봇까지 사냥한다. 결국 나쁜 디셉티콘 뿐만 아니라 착한 오토봇들도 거의 멸종당한다.
늘 그렇듯 악당이 다시 등장한다. 최고의 악당은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00-4다. 람보르기이니의 간판 슈퍼카다. 락다운이라는 로봇으로 변신해서 지구 정복을 노린다. 여기에 맞서서 다시 오토봇 군단이 일어선다. 이번에도 쉐보레 군단이 지구 평화를 지킨다. 범블비 쉐보레 카마로도 빠지지 않는다. 미래형 카마로였던 전편과 달리 이번엔 1967년형 쉐보레 카마로 SS로 변신한다. 바로 1세대 카마로다. 쉐보레의 간판 슈퍼카인 쉐보레 콜벳 스팅레이도 등장한다. 쉐보레 콜벳은 가오리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스팅 레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7세대 쉐보레 콜벳은 아예 이름이 스팅 레이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페터빌트379를 튜닝해서 특수한 트럭이 된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설립된 전통의 트럭 회사 웨스턴 스타의 튜닝 과정을 거친 업그레이드 페터빌트379다.
<트랜스포머>가 돌아왔다. 속편이 돌아온 게 아니다. 원편이 돌아왔다. <트랜스포머> 1편에서 쉐보레 카마로와 샘의 관계가 옵티머스 프라임과 케이드 예거 사이에서 재현된다. 정서적 생명력을 되찾았다. 원래가 구관이 명관이다. 범블비 쉐보레 카마로가 1세대 쉐보레 카마로 SS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인간이 차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동차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초월적 힘을 보태주기 때문이다. 자동차만 있으면 일상에서 벗어나 새벽에 훌쩍 강원도 동해바다로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멋지고 번듯하면 여자들 앞에서 식스팩 복근이라도 얻은 것처럼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 정서적 동일화를 느끼면서 자동차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케이드 예거와 옵티머스 프라임도 그런 유대 관계를 맺는다. 이건 쉐보레 카마로와 샘의 관계 이상이다. 스포츠카와 소년보다 트럭과 아저씨의 관계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인생을 아는 남자들끼리의 우정이 펼쳐진다. 제대로 변신한 셈이다. 누구한테나 첫 차가 있다. 르망이가 그립다.
글 l 신기주(에스콰이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