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기억이다. 한 선배와 동네의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남성지의 편집장으로 일했던 그는 그 즈음 자동차를 바꾸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 후배의 레스토랑에 갔던 우리는 그 후배가 자신의 자동차를 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고, 문득, 자신들의 목표가 일치했던 두 사람은 일순간 ‘알사미’라는 정체모를 어떤 것에 대해 박식한 흥분을 터뜨리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알사미? 알사미가 뭐에요?”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내 질문 따윈 아주 간단히 놓쳐 버렸다. 나중에야 나는 ‘정부미’도 아니고 ‘알사미’란 정체불명의 단어가 ‘R32'라는 걸 알게 되었고(허망했다), 그것이 자동차의 한 모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신 터라, 선배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맥락의 말을 했다.
“나는 인간의 사랑일까,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사물에 대한 사랑이라면 정말이지 잘 알 것 같아. 그게 더 두근거려. 자동차의 엔진음이라던가, 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 기계가 주는 적확한 아름다움을 보고 있으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
분명한 건, 내가 여기에 적은 말보다 몇 년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의 언변은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란 얘기다. 그는 사물에 대해서라면 밤이 가도록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령 시계라든가, 셔츠와 수트, 자동차에 관한 것이라면 말이다.
며칠 전, 기억이다. 친구와 이태원 근처에서 만났다. 저녁을 먹고, 술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가, 우리는 연이어 자동차 매장을 만났다. 최근 인사 이동 때문에 부서가 바뀐 친구는 우울한 탓인지 밥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유리창 안에 서 있는 자동차를 보더니 문득 “새 모델이 나왔네”라는 독백으로 닫았던 대화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된 장롱면허 소지자인 나는 자동차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관심이 없었지만, 남자들이 한결같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에 대한 사랑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박식한 흥분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치백이 어떻고, 연비가 어떻고, 앞으로 나오게 될 전기차의 미래가 어떻고, 그러니까 모 자동차 회사 주식에 미리 투자를 해두는 게 좋을 거라는 말과 동시에 터져 나온 제주시에서 시행 중인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얘기들 말이다.
“사물을 통해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남자의 방식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모를 것 같은 질문을 해놓고 상대가 모른다고 대답하면 '그런 것도 몰라?'하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우월함과 친절함을 펼쳐 보인다. 남자들은 자기 감정이나 내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자주 사물들을 화제로 삼는다. 자기 기분이 어떤지 말하지 않기 위해 날씨에 대해 언급하고, 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하지 않기 위해 정치와 스포츠를 말한다. 좀 더 가까운 사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과는 특별한 사물이나 기계에 대해 말한다. 골프 장비, 컴퓨터, 스마트폰, 자동차 등등, 그 사물들은 감정으로부터 먼 곳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김형경의 심리 에세이 ‘남자를 위하여’를 읽는 동안, 나는 사물에 대한 남자들의 ‘사랑’이 개개인의 특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종 자체’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국적, 나이, 인종을 초월하는데 미셀 푸르니에가 ‘외면일기’(내면 일기가 아니다!)를 쓰고 푸코의 ‘말과 사물’ 같은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진단한다. 남자는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살피는 일에 (여성에 비해) 극도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한 외국 정신과 의사의 책에서 읽은 글이 기억난다. 그의 남성 내담자들은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하고 물으면 하나 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그 질문을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며 그런 것은 왜 묻느냐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하는 일은 어떠세요?'하고 물으면 갑자기 열성을 다해, 크고 높은 목소리로, 자기가 어떻게 일을 잘해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실 내면에서 남자들은 너무나 많이 사랑을 갈구하고, 위로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감정적인 것을 표현하면 남자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감정을 억눌러왔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법이라고 배웠다.”
자신이 아니라 엉뚱하게 ‘사물’에 집착하는 남자와 (감정 장애가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연애를 시작한 친구들에게는 김형경의 이 책 ‘남자를 위하여’를 추천하고 싶다. 연애 중인데도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걸까 고민이라면,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같은 책도 함께 처방해주겠다. 또 한 가지 책이 있는데, 이건 남성의 시각에서 쓴 책이다. 제목이 몹시 유치찬란하지만 내용만큼은 꽤나 재미있다. 제목하여 '남자 마음을 사로잡는 매뉴얼'.
재밌는 건 이 책의 저자 스티브 산타가티가 본인 스스로를 '연쇄 연애범'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 남자의 주장은 이렇다. 범죄자보다 범죄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더없이 많은 여자와 연애한 자신만큼 연애를 많이 아는 천하의 나쁜 놈도 없다는 일종의 커밍아웃인 셈. 이 책은 그렇게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풍부한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당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남자는 나름대로 멀티태스킹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는 당신을 미소짓게 하는 동시에 자기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아마 이것을 제외한 남자의 유일한 멀티태스킹은 키스를 하면서 동시에 브래지어 끈을 푸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여자들에게 나쁜 남자의 실체에 대해 폭로한 이 책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나쁜 남자나 나쁜 남자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은 가능한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모호하게 숨긴다. 그렇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진실한 것도 아니죠) 이렇게 감정을 숨기면 나중에 기분 내킬 때 언제든지 헤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발설하기도 한다. 가장 재밌는 건 책의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
감정을 ‘일부러’ 속일 수 있는 남자라면 그의 이름을 ‘바람둥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나 슬픔 때문인지 배고픔이나 분노 때문인지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닫고 사는 일에 익숙해진 덕분에 남자들은 자기감정을 ‘섹스’라는 하나의 출구로 분출시킨다. 화해하고 싶거나,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하는 ‘섹스’가 대화와 관계를 중요시하는 여자들에게 터무니없는 분노를 일으키는 맥락 또한 남녀의 사고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여자와 남자가 이토록 다르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 걸까. '우리가 몰랐던 남성’의 저자 로즈 킹마는 “남자가 이르고자 하는 내면의 감정에 도달하도록 안내해줄 사람은 여자밖에 없다. 오직 여자만이 부드러운 공감의 손길을 건넬 수 있다. 남자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자가 도와주어야 한다. 남성들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들어서야 하는 정신적 상태는 오직 여성들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 정신적 상태란 감정적 생동감과 친밀함, 인간관계를 떠안을 역량, 타고난 양육 능력, 감정 언어를 사용하는 친숙함, 생명을 잉태하여 탄생시키는 능력 등이다. 친구와 한남동의 한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술을 마시다가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내 얘길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실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 왜곡된 분노와 슬픔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때 내가 느꼈던 절망감에 대해 얘기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마시다가, 결국 그는 자동차나 오늘의 날씨가 아닌 자신의 얘길 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얘길하던 친구의 눈이 붉게 충혈됐을 때, 나는 그가 비로소 자신의 분노를 정당히 표출하며 구원받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나 ‘너’가 아닌 ‘우리’가 되었을 때야 끝내 얻을 수 있는 어떤 위안 같은 것 말이다. 서로가 서로의 위안이 되고 함께 ‘우리’가 되어 울어주는 방식. 사실 이것은 여자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일상이다. 남자들은 잘 모르는...
글 ㅣ 백영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