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소문대로의 연비와 성능이었습니다.
원래 디젤승용차를 타오던 터라 말리부 디젤에 대한 환상은 그다지 없는 편이었습니다.
연비와 성능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디젤이 시끄럽다는 편견도 생활이 되어있는 만큼 익숙해져 있을 뿐이었지요. 말리부 디젤에 대한 기사가 호평 일색으로 장식되어있는 와중에 마음 한구석에는 ‘그래 평범한 디젤의 장점을 가진 괜찮은 차 일꺼야’ 정도의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디젤이라 하더라도 중형차의 2.0L 엔진은 거의 공식으로 자리잡은 기준이 되어버렸고 디자인의 호불호와 브랜드의 충성도의 차이만 있을 뿐 중형차 시장은 상향 평준화 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었습니다.
차를 위해 출근한 회사에서 처음 받아들고 내부의 새차 냄새를 스윽 맡으면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은 고급스러운 쉐보레 차량이구나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디테일한 부분들에서 차이가 있긴 했지만 클러스터와 센터페시아 등의 기본적인 배치들은 쉐보레의 기본 컨셉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습니다. 헤드라이트 온오프 스위치가 운전석 좌측 하단에 있는 점이라든지, 실린터 타입의 계기판을 사용한다는지 하는 점은 공통된 쉐보레 디자인이었지요.
대신 에어컨 송풍구에서 시작되는 무드등 같이 고급화를 꾀한 부분들로 인해 전반적으로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가솔린의 사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리부만의 색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분부분 적용된 하이그로시와 크롬 장식들로 인해 이 차가 쉐보레의 간판 중형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눈요기는 이정도로 하고...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휴가기간에 회사에 나와 차를 인수한 덕분에 귀갓길에 바로 도심과 고속도로를 오가며 성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는 늘 그렇듯 디젤엔진의 준수한 성능에 탄복하고, 도심구간에서는 조용한 소음에 만족했지요. 비교적 낮고 여유로운 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온다는, 조금은 전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고속도로에서의 추월은 왠만한 대형차 부럽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밟으면 밟는대로 나간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은 듯 했습니다. 심지어는 언덕구간에서도 빠른 가속이 가능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소음은 조금 시끄러운 가솔린 차량 정도로, 디젤 특유의 ‘갈갈갈’ 소음에 적응한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깜놀할 수준의 정숙성이었습니다. 디젤임에도 꽤나 조용했던 이유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닛을 열어보니 두터운 흡음 패드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습니다. 이걸 보고서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지요.
준수한 성능에 뛰어난 정숙성. 이내 연비가 궁금해져서 스위치를 이리저리 돌려 확인해 보고팠으나, ODD를 막 리셋 했기 때문에 계기판 연비는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디젤 연비에 대한 고정관념 – 적당히 좋은 연비 - 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연료의 특성상 아무리 효율이 좋더라 하더라도 운전자의 습관에 따라 오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고, 제 운전 스타일이 연비를 지향하는 쪽도 아니었고.
결국 말리부 디젤의 연비는 일반적인 승용디젤의 연비 – 15km/l를 가질 것이라 막연하게 예상할 뿐이었지요.
하지만 시승기간에 연휴가 겹쳐 부산을 다녀올 무모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는데, 덕분에 약 1,000km에 걸친 거리를 달려볼 행운(?)이 주어졌습니다. 고속도로와 부산시내를 약 사흘 반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녔으니 시간으로는 도심과 고속도로가 약 반반, 거리로는 대부분을 고속도로에서 보낸 셈이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장거리 였을 터인데 지나고 보니 운전이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탄탄한 서스펜션으로 인한 안정적인 주행’ 이 쉐보레 차량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역시 긴 거리를 이동할 때 빛을 보는 장점이 아니었을까요. 이동 중간에 폭우도 만나고, 정체도 만나고, 밤에도 달리고, 언덕에, 고속 코너에, 다양한 환경에서 말리부 디젤과 함께 하면서 저질체력임에도 쉽게 지지치 않게 된 것을 말리부의 공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거기에 아마 안락한 인테리어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시승기간 1주일 동안 총 1,300여 km를 달리면서 가장 궁금했던 연비는 18km/l 안팎. 고속도로가 많았지만 시승차가 부드럽지 않은 운전자를 만난 것 치고는 꽤나 놀라울 수준의 연비였습니다.
분명 기억에 중간중간 과감한 추월이 있었고, 인간 최고속도 제한기를 천명한 마눌님의 경고가 꽤나 여러 번 있었던 걸 떠올리면 연비부분에서는 칭찬을 들어 마땅해야 할겁니다. 크루즈 컨트롤도 거의 쓰지 않았으니 기름을 칠칠맞게 쓰고 다닌 편에 비해 높은 연비가 나온 것이지요. 각종 기사에서 침이 마르게 부각되던 연비는 소문대로 ‘과연’ 이었습니다.
반납하면서 마지막으로 확인한 계기판으로 부터 기자들이 느꼈던 놀라움이 다시 한번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6박7일 1,300km의 주행동안 말리부 디젤에서 받은 느낌은 간단하면서도 명쾌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스타일리쉬한 중형 세단' 아베오 RS에 이어 지름신을 또한번 영접하게 될런지도 모를 말리부 디젤.
오늘 집에가는 길에 차가 좋다며 덩달아 칭찬하던 마눌님에게 슬그머니 꼬드겨 옵니다. ‘우리 가격도 좋고 성능도 좋고 연비도 좋은 말리부 디젤로 차 바꿔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