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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기타

백영옥의 자동차 일상다반사 - 어떤 기막힌 여행


캡티바


해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건, 노는 날, 즉 빨간 날이다. 한 달 넘게 휴가를 즐기는 유럽인들과 다르게 대부분 야근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노동조건 속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쉬는 날’이 며칠인지는 꽤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2014년 연초부터 직장인들의 관심은 온통 5월 초 황금연휴에 있었다. 


2014년 달력을 펼치자, 노동절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까지, 5월 1일을 기점으로 길면 열흘 가까이 쉴 수 있는 보기 드물게 긴 연휴가 이어진 것이다. 파리나 뉴욕처럼 먼 곳으로 가는 사람들부터 가까운 동남아에 가는 사람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호텔 닷컴’이나 ‘에어 비앤비’ 같은 사이트에서 자신이 원하는 호텔과 집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이야 말로 가장 손쉽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이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진도에서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대형 선박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안내방송’에 순응해 선실 안에 있다가 참극을 면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더 분노했고, 절망했다. 또 그것이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라는 것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모든 사람들이 슬픔에 잠겼다. 텔레비전을 틀면 하루 종일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른들을 용서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집단 우울증이 몰려왔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5월 호황을 기대하던 여행업계였을 것이다. 떠나고자 하던 들뜬 마음이 차갑게 침몰한 대형 선박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은 일제히 임시 휴업 상태로 돌입했다. 패션지나 광고 쪽에 잡혀 있던 해외촬영 일정이 줄줄이 취소됐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닌데, 북 콘서트나 작가 낭독회 등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시기에 힘들게 책을 낸 작가들은 ‘불운하다’라 말하는 것조차 가슴 아팠을 것이다. 슬픔은 기쁨보다 전염성이 훨씬 더 강하다.  


런 참혹한 시절에 자동차에 대한 위트있는 글을 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자동차와 관련된 비극적인 느낌의 글이어야 할 텐데, 그런 글은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만들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떠나는 어떤 여행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때의 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즐겁고 명랑한 여행이 아니다.


  

“일요일 오전, 진부와 속초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스쳤다. 속초 70km라고 써 있었다. 이 속도로 가면 1시간 후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길가의 나무들이 바람에 심하게 부대껴 흔들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흐린 하늘 사이로 바람이 훅 얼굴 사이로 밀려왔다. 진눈깨비 같은 것이 땅으로 떨어질 듯 공중을 부유했다. 여전히 강원도는 몸 좋은 사십 대 사내의 등 근육 같은 산들을 품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달리자 멀리 미시령 옛길과 속초로 가는 터널이 나타났다. 새로 산 네비게이션은 터널 쪽을 가리키며 터널구간 운행 주의를 알리는 경고 메시지를 내보냈다.”  

 

단편 ‘결혼기념일’의 주인공은 한때 잘 나가던 드라마 피디였던 남편과 결혼생활을 청산 한 후,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그녀는 상처를 극복하려는 듯 광고업계에서 일중독자처럼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동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시동생은 남편이 남긴 유품 중에 결혼반지와 결혼 앨범이 있다는 말을 남긴다. 본인이 처리할 수 없으니 그것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부탁과 함께 말이다. 여자는 유품을 찾기 위해 자신들이 결혼했던 속초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옛길이 되어 버린 ‘미시령 길’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폐쇄된 미시령 휴게소와 마주치며, 옛 기억에 사로잡힌다. 


“추암 해변의 낡은 재규어 앞에서 먼저 이혼을 말한 건 그였다. “다른 건 다 네가 다 가져. 나한텐 차만 줘.” 경멸을 가장한 무표정이라던가, 조소를 숨기기 위한 미소는 필요하지 않았다...집은 이미 은행에서 압류된 상태였다. 우리를 지탱하던 마이너스 통장은 바닥을 친지 오래였고, 사방 1킬로미터 안에 있는 주위 어떤 사람에게도 더 이상 돈을 꿀 수 없었다. 그가 내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은 우리의 화려한 과거를 상징하듯 남아 있는 유물 같은 짙은 초록색 재규어 스포츠카 한 대 밖에 없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차가 꼭 필요해. 돈 벌면 하나 사 줄게.” “나중에 돈 벌면?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나한테 차도 못 줘?” “내가 샀잖아.” “내가 골랐어! 마지막 6개월 할부금도 내가 냈어!” “이러지 말자, 제발.” “차라리 팔아버려. 반으로 갈라서 나누자고. 톱이라도 갖다 줘? 당신이 자를래? 내가 해치워 버릴까?”.... 기암괴석이 솟아 있는 추암의 절벽을 바라보며 내 삶 역시 저 절벽 밖으로 내던져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자동차라면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고 한동안 공중 부양하듯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빈 몸뚱이로 저 절벽 아래 몸을 날린다면, 바위에 머리가 박살나 파도에 씻겨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차를 가지고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그의 한숨과 탄식으로부터 그렇게 작별하고 싶었다. 그 역시 차를 타고 지긋지긋한 서울을 떠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는 해변에 세워놓은 차를 바라봤다. 가난한 우리가 가지기엔 터무니없이 호사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때 우리가 동시에 원하던 유일한 것이었다.“ 

 

남자들이 생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여자와 확연히 다르다. 본능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남자와의 관계에 투여하지만,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데 불안감을 느끼는 남자들은 사물에 더 큰 욕망을 느낀다. 가령 술이나 자동차, 장난감 같은 것들 말이다. (일단 섹스는 예외로 하자) 나는 ‘스타워즈’나 ‘어벤저스’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일본이나 미국 행 비행기에 기꺼이 몸을 싣는 남자들을 여럿 봤다. 남자에게 자동차란 어쩌면 여자들의 샤넬 2.55 가방 같은 존재인 셈이다. 


“이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결혼이 조금씩 쌓여가는 적분이라면, 이혼은 가장 작은 것까지 나누어야하는 미분이라는 것. 공정해지기 위해 서로의 물건을 나누다보면, 결국 모든 게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함께 공유하던 시간이나 추억, 영혼까지도 말이다. 이혼의 핵심은 공정한 분배이다.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공정한 분배여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건 빚뿐이었다.”


패한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인간은 별 수 없이 성공보다 실패 쪽에 더 가까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두 죽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상실의 공동체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과 자신 사이에 남은 건, 결국 이 오래된 자동차 한 대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가고, 물건은 남았다. 회한에 찬 그녀는 남편의 사고 지점에 난 스키드 마크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 흘린다.  


강원도에 폭설이 내리고, 여자가 타고 갔던 낡은 자동차가 폭설 안에 갇힌다. 설상가상, 뒤늦게 도착한 견인차가 후륜구동인 외제차를 견인할 수 없는 오래된 것이라 여자는 강원도 하늘에 매장된 어마어마한 눈 더미 속에 꼼짝없이 갇혀 버리는 것이다. 이 소설이 영화라면 영화의 끝은 끝도 없이 쏟아지는 눈 속에 파묻힌 여자의 멍한 얼굴로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묘한 표정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마도 나는 그것을 ‘슬픔’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촛불


노동절 여행을 계획했던 친구들 몇 명이 해외여행을 취소했다. 가까운 곳에 바람을 쐬러 가거나, 진도로 내려가 사람들을 돕겠다는 친구도 보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그 여행길에 즐겁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별 수 없이 글을 써야 한다면, 지금의 내 마음으로 간신히 쓸 수 있는 글은 이런 것 밖에 없다.

어떠한 것으로도 이런 종류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지만 간신히 말이라는 걸 꺼내야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런 것이다. 우리는 시들 걸 알고도 꽃을 사고, 죽을 걸 알고도 살고, 헤어질 걸 알고도 만난다는 것. 이 나이쯤 되니 ‘자연스럽다’란 말은 실은 ‘잔인하고 고통스럽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라는 걸 겨우 알게 된다는 것, 그래서 이 집단적인 슬픔 앞에선, 그 어떤 말보다 그저 손을 내밀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설혹 헤어진 남편, 결별한 연인,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울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글 ㅣ 백영옥(소설가)



※ 본 컨텐츠는 칼럼니스트 개인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내용에 있어 한국지엠 톡 블로그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