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현의 희망자동차(1) 가사관리사 협동조합, '우렁각시'
우렁각시 이야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끕니다.
우렁각시 설화는 한 가난한 노총각이 논두렁에서 발견한 큰 우렁이 속에 아리따운 각시가 숨어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각시는 총각이 일을 나가면 남모르게 집안일을 해주고 이내 우렁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를 알게된 총각은 몰래 숨어있다 우렁에서 나온 각시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성질 급한 총각은 곧바로 각시에게 청혼해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요.
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 누군가 근사한 밥상을 차리고 빨래며 청소를 말끔하게 해준다니 일단 부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가사 노동의 고단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감할 부분입니다. 전국여성가사사업단 우렁각시는, 옛날 이야기처럼 신비롭지는 않지만 가사노동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는 설화 속 우렁각시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사노동자의 일자리와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는 가사관리사 협동조합, 우렁각시를 방문했습니다.
글 ㅣ 조숙현 (전 FILM2.0 기자, 전 퍼블릭아트 에디터, 현재는 아트레지던스를 주제로 단행본을 준비 중)
우렁각시는 돌봄이 필요한 가정에 교육된 가사노동자를 배정해 주고 취업취약계층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협동조합입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가사도우미 알선업체와는 다릅니다. 주로 경력이 단절된 중년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가사노동자의 권익과 사회적 공익을 생각합니다.
우렁각시는 현재 서울에 3개 지부가 있습니다. 장롱에서 나와 몰래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힘든 가사노동을 대신해준다는 점에서는 설화 속 우렁각시가 따로 없습니다. 한쪽 벽면에 40여 명 회원의 얼굴이 빼곡하게 채워져있습니다.
다림질, 청소 새로 배우고 가정안전수칙까지 습득
‘신체 건강한 여성’, 우렁각시의 지원자격은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회원들의 전문성은 만만치 않습니다. 가정안전수칙은 물론이고 옷을 개고 다리는 것 같은 일상적인 일도 한 달간 강습을 통해 전문적으로 교육합니다. 비록 한 달이지만 학습 효과는 상당합니다. 회원들 평균 가사노동 경력이 20년에서 무려 30년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한달 동안의 교육이 끝나면 협동조합 회원이 되고 필요한 가정에 배정됩니다.
최영미 우렁각시 대표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비영리단체에서 찔끔찔끔 나오는 사회보조금으로 교육했으니까요. 그때는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게요? 소방서에서 사람 모셔다가 가정안전수칙 교육받고, 세탁소 주인 모셔다가 옷 개키고 다림질 하는 거 강습 받고, 그렇게 만들어진 교재에요, 이게.
최영미 우렁각시 대표는 50쪽 남짓의 자료집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입니다.
교재에는 돌봄서비스 직업인의 자세, 업무매뉴얼, 민원사례를 통해서 살펴보는 상황대처 능력까지, 다양한 가사노동 노하우가 들어 있습니다. 펼쳐보니, 눈에 들어오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특히 ‘민원사례’에는 미쳐 생각지 못한 내용들이 등장합니다.
(사례 1) “48평 아파트에 사는 고객은 관리사에게 벽을 닦아달라고 하였다. 고객 남편이 천식과 비염환자였다. 아파트의 모든 벽을 의자 위에 올라가서 닦아달라는 것인데 관리사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월1회만 닦아주며 방바닥에 서서 밀대걸레로 닦아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사례 2) “관리사가 오는 날을 기다려 일거리를 쌓아놓는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다. 그러면 이런 이런 것은 안되고 기본 4시간에 '무엇, 무엇, 무엇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오버했을 때는 시간당 얼마 추가된다는 것이 알선 첫날에 분명히 언급을 해야 한다.”
교재에는 ‘우렁각시 이용약관’도 있습니다. 계약 전에 고객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우렁각시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공미애 우렁각시 회원
산후관리사 9년차 공미애 회원은 우렁각시를 통해 전문직장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가사노동자를 전문직업으로, 직장으로 생각하고 다닐 수가 있어요. 우렁각시 회원이 되면서 동료가 생겼다는 점도 너무 좋아요. 주부들은 밀폐된 환경에서 일하잖아요. 따로 자기 이야기라는 걸 할 데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부우울증 같은 것도 생기는 거고.
인터뷰가 끝날 즈음, 우렁각시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집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등포구청에서 열리는 달시장에 가야 한답니다.
지역 주민과 사회적 경제그룹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달시장에 우렁각시도 참여합니다. 수익은 협동조합의 운영조합과 회원들의 뜻을 모은 신규 사업에 활용됩니다.
'달시장'이란?
지역주민과 예술가, 사회적기업가들이 함께하는 벼룩시장이자 문화 축제
장소: 영등포구청 하자센터 앞
시간: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달이 뜰 즈음(오후 6시부터 9시)
저도 함께 달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우렁각시에서 준비한 물품은 회원분들이 기증해 주신 옷가지와 생활용품들, 그리고 직거래 참기름과 들기름, 빨래 비누 등입니다.
처음에는 마땅히 짐을 옮길 수단이 없어 알음알음 친분을 통해 차를 빌려 쓰곤 했습니다. 차를 빌릴 수 없는 경우에는 짐을 직접 손에 들고 먼 거리를 오가야 했습니다.
2012년 쉐보레에서 스파크 차량을 지원받으면서부터는 달시장 참여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덕분에 참여 품목도 늘고 규모도 갖췄습니다. 이외에도 가사노동자 의식 개선 캠페인 등 조합의 중요한 사업을 진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날도 달시장에 물건을 나르느라 스파크는 시장과 우렁각시 사무실을 3번 오갔습니다.
한국지엠한마음재단 차량기증
한국지엠한마음재단은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총 403대의 차량을 전국의 사회복지시설에 기증했습니다. 한국지엠한마음재단에서는 매년 신청서를 받아 아동, 장애인, 노인, 지역복지, 다문화가정, 노숙인, 자원봉사 등 사회복지시설의 활동과 필요성을 고려해 대상자를 선정하고 차량을 기증하고 있습니다.
달이 뜨는 시간(오후 6시~9시)에 열린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달시장.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닙니다. 사회적/공공적 성격을 띤 조합들과 단체들만이 참여합니다.
핸드메이드 빨래비누, 단 돈 천원!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건 사 가는 게 이익이라며, 우렁각시들이 손님들을 불러세웁니다.
3년째 달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우렁각시의 다음 목표는,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우렁각시들에게 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주민금고’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봐서는, 올해가 끝날 무렵에는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식모', '가정부', '파출부' 대신 '가사관리사'로
가사 노동자의 권익향상은 우렁각시가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입니다.
요즘은 가사노동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특히 젊은 층들은 가사노동자를 가사일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아직 모두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렁각시에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 알고 보니까 남편이 건설회사 이사까지 한 사모님이었는데 사업이 잘 안 되고 집안이 기울면서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에요. 사실 지금도 여기 찾아오는 분들 보면, 2/3 정도가 애들 학원비, 자녀결혼자금 마련하려고 찾는 분들이 에요. 몇 년 전만 해도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다니는 분들도 많았어요. 아마 지금도 일반 알선업체는 그럴 거에요.
최영미 대표는 인식의 변화가 용어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왜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했을까요? ‘식모’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요. 1950년대에는 가사노동자를 식모라고 불렀어요. 7~80년대 와서는 파출부라고 했고요.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 비영리단체에서 이 분들을 ‘도우미’라고 부르자는 캠페인을 했어요. 그렇게 가사관리사까지 온 거에요. 용어가 그만큼 중요해요. 가정부나 파출부는 이제 기록에나 남아야 할 옛말입니다. 가사관리사는 전문교육과 훈련을 받고 고객가정에 맞춤형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업인입니다.
달시장이 마무리되어 가는 어둑한 시간까지 우렁각시들은 활기차게 물건을 팔고 우렁각시의 활동을 알렸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된 행사에도 회원들은 표정이 밝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힘이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쉐보레 스파크도 우렁각시처럼 그녀들을 도울 것입니다.
우렁각시가 필요하면 이곳으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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