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얼마에요?
구매 안에서는 바이어를 구매쟁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업종에서 혹은 다른 회사에서는 모르겠습니다만, 최소 한국지엠 내에서는 그렇게 부르지요. 구매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하는 일이 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업체를 선정하고, 공급을 관리하고, 가격을 관리하고, 협상하고. 하는 일을 주로 맡아 담당합니다.
공급받을 물건의 가격을 관리한다는 특성 때문에 얻게 된 직업병이 하나 있습니다. ‘저 물건의 원가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하면 싸게 살 수 있을까?’
굳이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가 아니더라도 길거리에 붙은 전단지를 보면, 도대체 원가가 어떻게 되길래 저렇게 싸게 팔지? 라는 생각이 종종 들게 되지요. 몸에 배인 탓에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종종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천성이 구매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구매 담당자들의 회사 밖 생활을 엿보면 재미있는 점들이 많습니다. 생활에서도 업무를 하듯 분석하고 협상을 하는 분들이 대표적입니다.
물건을 살 때 절대로 충동구매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가격을 비교한 후 물건을 구입 합니다. 그렇다고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시세를 파악한 후 두 세 곳만 집중 공략하는 특성이 있죠.
핸드폰을 살 때 이런 성향이 두드러지는데요.
우선 두세 명 그룹을 묶어 구매력을 높입니다. (번들 패키지라고 합니다.) 시세를 파악한 후 핸드폰 가게 혹은 온라인에서 협상을 시도합니다. 당연히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합니다(견적을 받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가격 비교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를 결정합니다. 결정되면 반드시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봅니다.
특히 제가 놀랐던 부분은 계약서의 확인입니다.
보통 양이 많아서 대충 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드시 읽어봅니다. 이동통신 회사의 개통 계약서라도 얄짤 없습니다. 모든 사항을 읽은 후 문제가 있으면 딴지를 겁니다.
원하는 대로 계약서를 수정한 후 돈을 냅니다. 계약서 내의 고객 권리를 최대한 활용합니다. 구매한 핸드폰이 문제가 있다. 워런티 기간 내에 몇 번이고 교환을 요청합니다.
반면에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할만큼 하니 생활에서 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는 쪽이지요. 사노라고 마음먹기부터 실제 구매까지 만 하루면 충분한 케이스입니다. 가격 비교 싸이트에 들어가서 몇 십분 클릭하고 바로 결재 고고씽.
싸게 살줄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싸게 사기 귀찮아서 그렇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배송 대행지가 필요한 해외직구는 다른 나라 이야기입니다. 설렁설렁 알아보고 단기간에 잽싸게 구매합니다. 어제 '이게 괜찮은 거 같은데' 라고 하고 다음날 보면 '이거 괜찮은데?' 하며 손에 쥐어져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극과 극의 패턴이 나오게 되는 걸까요. 두 부류가 정 반대의 구매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원가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차이는 인건비 – 서비스 비용입니다. 어짜피 제품의 공장 출고가격은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에 얼마의 이윤과 서비스 비용을 붙이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게 되는데요.
전자의 사람들은 이를 박하게 보는 편입니다. 반드시 최저가 혹은 그 이하의 가격으로 구매를 시도하지요. 하지만 후자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내가 적당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거기에 어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붙더라도 감내하는 쪽입니다.
심지어는 귀찮음의 가격을 추가 비용으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조금 더 비싸더라도 내가 수고를 덜했기 때문에 좋다. 라는 마인드를 가집니다.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다른 구매패턴이 나오는 이유는 기저에 깔려 있는 원가분석에 있었던 것이었죠. 개인의 노력을 어떤 가격으로 산정하느냐. 바로 이 차이인 겁니다.
글쎄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쪽에 속하지 않나 합니다. 회사대 회사로 일을 할 때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개인의 거래로 넘어가면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거든요. 물론 경향은 경향일 뿐, 저도 너무 비싸게 사면 배가 아픈 건 매한가지 입니다. -_-;;;
바이어인 저는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답니다. 자. 과연 여러분은 어떤 구매 성향을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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