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의 전설적인 CEO, 알프레드 슬론을 아시나요?
오래된 것을 좀 더 유익한 새로운 것으로 바꾸겠다 (알프레드 슬론)
이번 포스팅에서는 GM의 전설적인 CEO, 알프레드 슬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진출처 : 2015 Time Inc중에 일부>
알프레드 슬론(Alfred Sloan)
1875년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출생, 1892년 17세 때 MIT 전기공학과 3년만에 졸업, 하얏트 룰러 베어링 컴퍼니 입사 후 1899년 사장 취임, 1918년 회사가 GM에 인수되면 부사장 취임, 1934년 알프레드 슬론 파운데이션(재단 설립), 1966년 심장마비로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에서 사망할 때까지 GM의 명예회장직 유지
알프레드 슬론은 GM의 창립자이자 CEO 였던 월리엄 듀란트가 1923년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GM의 경영을 맡았습니다. 훗날 경영계의 전설로 남은 슬론은 듀런트로부터 경영권을 넘겨 받고 당시 경쟁사였던 포드를 넘어서기 위해서 브랜드를 차종과 가격별로 차별화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연령별, 소득별로 서로 다른 소비자 수요를 고려한 자동차 라인업을 구성하는 현대식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것이었죠. 슬론은 이를 통해 포드를 넘어서 GM을 세계 최고의 자동차 업체로 이끌었습니다. 슬론은 메사추세공대(MIT)에서 경영대학원 이름이 슬론 스쿨(Sloan School)로 지어질 정도로 경영계의 큰 획을 그었습니다. 재미잇는 점은 그가 경영을 전공한 것이 아니라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었다는 점입니다.
슬론은 "모든 고객의 추구와 목적에 맞는 차(a Car for every purse and purpose)"라는 경영 방침을 쉐웠습니다. 폰티악과 쉐보레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했다면 뷰익과 올즈모빌은 좀더 고풍스럽고 중후한 디자인과 기능을 추구하는 고객에게 접근했습니다. 한편 캐딜락은 한층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기능을 선호하는 고객을 목표로 했습니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을 위한 폰티악. 폰티악은 현재 생산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GM에서는 폰티악의 홈페이지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GM의 패밀리 싸이트와 연결되게 홈페이지를 구성하였습니다.
삶의 여유가 있지만 신중한 사람들을 위한 올즈모빌
올즈모빌도 폰티악과 동일하게 현재 생산되는 차량이 아닙니다.
야망을 가진 정치인들이 선택할 것 같은 중후한 느낌의 뷰익
캐딜락은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고객들을 타깃으로 했습니다. 사진은 GM 헤리티지 센터에 전시된 1931년 캐딜락 V16. 깔끔하게 관리되어서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알프레드 슬론은 1925년에는 영국의 복스홀(Vauxhall)를 인수했고 1920 독일 오펠(Adam Opel AG) 그리고 1931년에는 호주의 홀덴(Holden)를 인수하였습니다. 현재 GM 홈페이지를 보게 되면 슬론의 주력으로 삼았던 모델중에 남은 것들은 쉐보레, 뷰익, 캐딜락입니다.
(왼쪽부터 알프레드 슬론, 찰스 프랜클린 케터링
한편 알프레드 슬론은 의학분야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1940년 GM 리서치 코퍼레이션 부사장이었던 찰스 프랭클린 케터링과 함께 슬론 케터링 연구소(Sloan Kettering Institute, SKI)를 열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이후 미국 의학 연구를 선도하는 기관이 됐습니다.
GM에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의학 분야에도 기여한 알프레도 슬론은 1966년 자신이 설립한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혁신성과 창의성은 오늘날의 GM에도 계속 되기를 희망하면서 지고릴라는 다음에 더 좋은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