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강원도 진부령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의 역사가 올해로 벌써 22년이 되었습니다.
22년. 레이스 선진국에 비하면 초라한 역사지만, 짧은 기간동안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초기에는 일반차와 다름없었던 경주차로 경기를 치뤘었고, 특별한 서킷없이 레이스는 임시트랙에서 치뤄졌었습니다. 프로모터가 운영하는 챔피언십 시리즈가 아닌 동호회 주최의 단순 이벤트였던 레이스가 이제는 챔피언십 시리즈 이름표를 붙였고, 국제자동차연맹(FIA)의 ASN(자국내 모터스포츠 관장권)을 위임받은 단체(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대회를 공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 굉장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한국모터스포츠클럽이 주최한 국내 첫 자동차 경주는 제 1회 한국자동차경기대회였습니다. 특별한 규정없이 오프로드에서 랠리 형태로 열린 이 대회부터 한국 모터스포츠의 서막이 열린 것인데요. 변변한 서킷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차 경주라는 새 장르가 개척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의 효시는 1987년 3월19일 열린 제1회 한국자동차 대회였습니다. 진부령을 넘는 일반도로에서 자동차 경주가 시작되었는데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당시의 경주는 변변한 규정이나 규칙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치러진 단순 이벤트에 불과했습니다. 그 뒤 경기가 계속해서 치뤄지자, 인천 영종도와 송도 등의 임시트랙이 자동차 경주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동차 경주는 계속 되었고, 89년부터는 그 전과는 다르게 외적인 모양새를 조금씩 갖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원메이크전을 도입하는 등 세분화한 클래스에 따라 순위를 매기기도 시작했습니다. 부산 에이스원 그랑프리, 챌린지컵 레이스, 짐카나 등이 이때 열렸고, 그 후 90년 몽산포 300km 레이스를 기점으로 자동차 다변화가 모색되었습니다.
비교적 자동차 경주다운 모습을 갖춘 것은 격전장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옮기면서부터였습니다. 91년 11월 전국 자동차 슬라럼 챌린지와 함께 시작된 용인시대는 92년 도약의 해를 맞있는데요. 코리아챔피언십, 슬라럼등 92년 열린 8차례 대회 중 무려 4경기가 용인에서 치러져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중심무대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해 9월에는 국내 첫 서킷 레이스인 한국자동차경주챔피언십 시리즈 1전이 자연농원 모터파크(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전신)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모터파크의 윤곽이 완성된 용인은 국내 자동차 경주의 메카로 떠올랐습니다. 한국자동차협회(KAA)가 주최한 60분 내구레이스, 코리아챔피언십, 짐카나 등이 모터파크에 둥지를 튼 93년 핵심 레이스였습니다.
95년은 국내 모터스포츠사에 큰 획을 그은 해였습니다. 우리나라 첫 상설 서킷 개장과 함께 챔피언십 시리즈(기아컵 MBC 코리아 그랑프리) 제1전이 열린 것입니다. 34개팀 120여 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한 개막전에는 3,000명 가량의 관중과 보도진 200명이 몰려 국내 자동차 경주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습니다. 경주 클래스는 투어링카A.B, 원메이크 현대, 기아, 대우전 등 5개로 치뤄졌었습니다.
1년 뒤인 96년에는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이때 출범한 한국모터챔피언십은 2005년까지 펼쳐졌습니다. 2001년에는 코리아투어링카챔피언십(KTCC)과 한국모터챔피언십 등 2개 시리즈가 국내 모터스포츠계를 달궜습니다. 하지만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 메인 스폰서인 BAT코리아가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철수하자 국내 모터스포츠계는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대회 주최측인 KMRC가 후원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에 선수협의회는 별도의 시리즈를 창설했습니다. GT챔피언십 시리즈로 출범했으나 프로모터인 KGTCR 역시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대회개최가 불투명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시즌 중반부터 CJ가 후원사로 참여하면서 기사회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자동차 경주의 모태가 된 비포장경주는 1987~93년까지 영종도, 몽산포, 청포대, 김천 등지에서 벌어지다 97년부터 춘천 모터파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오프로드챔피언십으로 열린 이 대회는 2001년까지 계속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프로모터 부재와 경기장 사정으로 흐지부지된 상태입니다.
모터스포츠 역사 22년은 객관적으로 긴 시간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동호회 주최로 출발해 현재의 GT 챔피언십까지 성장한 것은 우리 모터스포츠계 전체가 일군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굵직한 국제 자동차 경주를 유치한 것은 국내 모터스포츠의 높아진 위치를 말해줍니다. 99년부터 5년 연속 창원시가지 서킷을 달군 F3 코리아 수퍼프리, AFOS(Asian Festival of Speed), 인터텍내구레이스 등은 국내 드라이버들에게 한차원 높은 자동차 경주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레이스 다양화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서킷뿐 아니라 금강산과 평창 랠리, 스노 레이스 등을 열어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동호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발전되어온 자동차 경주의 터전은 예전과 차이가 없습니다. 태백 서킷과 요인 스피드웨이만으로 자동차 경주를 펼칠 수 있는 마당이 너무 좁습니다. 그리고 드라이버와 미캐닉, 오피셜 분야의 인력보강도 시급한 상태이며, 일부 프로팀과 개인 참가자로 양분되는 현재의 구조로는 미래의 유망주를 키워내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팀들은 인재양성에 소홀하고, 규모가 작은 팀이나 개인은 자금력 부재로 이 분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모터스포츠는 외형에 비해 내실이 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GT 챔피언십 시리즈 프로모터인 KGTCR은 양적인 성장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거듭날 수 있도록 대회 운영 규칙을 국저화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2009년까지 GT클래스를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한편 대회상금도 총 3억 원으로 상향조정했습니다. 올 시즌에도 대기업인 CJ스포츠가 타이틀 스폰서로 나서며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경기들을 통해 모터스포츠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같은 노력들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꾸준하게 추진한다면 국내 모터스포츠도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외국의 경우, 메이커가 직접 나서서 모터스포츠 부흥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부분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내 모터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터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겟죠?
이상, 지엠대우톡의 토비토커 나롱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