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유달리 ‘네덜란드 선수들’이 금메달
시상대에 올라 환호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한국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빙상 경기 종목에서 특히
더 그랬다. 언젠가 본 기억이 나는데 네덜란드
남자들의 평균 키는 183센티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평균이 이 정도니 얼마나 큰 지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텔레비전에서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거구의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을 자주 보다 보니,
별 수 없이 1995년 처음 암스테르담에 갔던
생각이 났다. 스키폴 공항에 떨어지는 순간, 나는
당연히 ‘풍차’를 떠올렸다. 말하자면, ‘프란다스의 개’나
‘네로’가 떠올랐던 나는 풍차도 없고, 파트라슈 같은 멋진 개도 보이지
않는 이 도시의 첫 인상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하가 많은 도시 특성상 곧 타게 된 유람선 안에서, 나는 내 신장의 거의 두 배는
됨직한 여장남자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가장 놀랐던 건, 그 터프하게 생긴 남자의 귀나 목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장신구나 새빨간색 립스틱이 아니라, 키가 그렇게나 큰데도 불구하고 그가 (아니
그녀가)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여장남자의 애인은 그녀보다도 키가 5센티미터는 더 컸다.
사실 암스테르담이 내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나는 시내 상점의 가판대에서 버젓이 팔고 있는 도색 잡지의 수위 때문에 놀랐고(여자나 남자나 올 누드로 리듬 체조선수처럼 다들 다리를 180도로 벌리고 있었다), 그것을 연인인 듯한 사람들이 와서 마구 넘기며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에 더 놀랐고, 사람 팔뚝만한 딜도를 파는 가게 주인이 내게 ‘칼’도 아니고 ‘대한항공?’이라고 말을 건네 정말 놀랐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하도 얼빠진 얼굴로 잡지를 바라보고 있어서 던진 농담이었던 것 같다). 대마초나 하시시를 할 수 있는 카페가 합법인 급진적인 나라였단 걸 그때는 몰랐다.유레일패스로 유럽 전역을 도는 배낭여행 중이었던 나는 무엇보다 암스테르담 여기저기에 마구잡이로 세워져 있는 자동차 때문에 놀랐었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차가 한 두 대가 아니었던 거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을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꽤 자세히 나와 있다. “네덜란드 인들은 영국인들과 매우 비슷하다. 모두 좀 칠칠맞지 못하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차를 주차하는 법이나 쓰레기통을 배치하는 방법. 제일 가까운 나무나 난간 등에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모습까지 상당히 유사하다.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보는 강박적인 정리정돈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독일 스위스에서는 주택가에 주차된 차들도 자와 측량 기계를 이용해서 세워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차를 운하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려두는데, 물에 굴러 떨어지기 직전인 차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 책에는 “독일인들은 유머라면 아주 당혹스러워하며, 스위스 인들은 즐길 줄 모르고, 스페인 사람들은 자정에 저녁을 먹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심성이라곤 전혀 없는 이탈리아인들은 자동차 발명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라는 말도 적혀 있다.
빌 브라이슨이 이탈리아인들에게 나쁜 기억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기억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 이탈리아 자동차는 잔고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자동차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이탈리아 자동차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어떤 사람의 말을 기억한다. 하지만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보면 이탈리아 자동차에 대한 꽤 흥미로운 얘기가 등장한다. “이런 말
을 하면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의 자동차에는 표정이 있다.아무튼 타고 있는 운전자들만큼이나 표정이 풍부하다. 그래서 주차 공간을 발견하면 운전자와 함께 자동차도 싱긋 미소 짓는다. 그러나 그 공간을 간발의 차이로 다른 차에게 빼앗기면 자동차도 덩달아 낙담한다. 눈을 내리깔고 낭패라는 얼굴이 된다. 그런 표정 하나하나가 아주 생생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아주 재미있다. 이런 점은 일본의 자동차와는 많이 다르다. 일본의 자동차에는 이상하게도 표정이 없다. 기쁘건 슬프건 대부분 증권거래소의 일부 상장기업처럼 비슷비슷한 얼굴로 달리고 있다...... 벤츠에는 어떤 표정이 있다. 그러나 한 종류의 표정 밖에 없는 것이 벤츠의 무서운 점이다. 마치 고르고 13처럼 말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볼 때 이탈리아의 자동차는 정말 위대하다. 표정이 있다고 할까. 혹시라도 길가에 서서 한쪽 다리를 들고 똥을 누지나 않을까 싶다. 이런 자동차는 사실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능이야 어쨌든 나는 이탈리아 자동차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하루키가 이탈리아 자동차에서 표정을 봤다면 내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자그마한 덩치의 차였다. 네덜란드에서 내가 본 차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그들의 훤칠한 키에 ‘반비례’하는 조그만 차였다. 그건 프랑스를 가든 이탈리아를 가든 마찬가지였는데, 산만한 덩치를 가진 유럽 사람들이 잘 하면 몸에 ‘낄’ 것처럼 보이는 작달막한 차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게 나로선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중대형 세단은 프랑스에선 대기업 중역 정도나 되야 겨우 타는 큰 자동차라는 걸 파리에 오래 산 친구가 얘기해주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나치게 큰 차를 좋아하고, 사치스럽다는 것이다. 언젠가 소형차를 구입한 사람들의 많은 숫자가 대부분 몇 년 안에 차를 되판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소형차에 대한 유머도 꽤나 많은데 최근에 내가 본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건 어느 스파크 뒷유리에 붙은 문구였다.
"저도 얼렁 커서 캐딜락 될랍니다." 아마 한국 사람들이라면 웃음의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걸까. 왜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의 크기에 집착하는 걸까? 이 이유를 늘 궁금해하던 차에 나는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은 '설득의 심리학'의 한 대목이다
“예를 들어 자가 진단으로 유방암을 점검해보라고 광고하는 팸플릿을 만드는 경우에 그러한 검사를 통해 얻게 되는 것보다 그러한 검사를 하지 않으면 잃게 되는 것에 대해 강조한 경우가 훨씬 더 성공적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흡연자들에게 지금 담배를 끊지 않을 경우에 잃게 될 수년간의 세월을 설명한 편지가 담배를 끊을 경우 얻게 될 효과에 대해서 언급한 편지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이 말은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작은 차가 아닌 큰 차를 선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말하자면, 소형차 기피 현상은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큰 차 사랑이나 낭비벽 때문이라기보단, 큰 차를 사지 않으면 사고에 효율적으로 대비하지 못한다는 어마어마한 공포 때문인 것이다. 나는 소형차가 고속도로에서 마치 큰 차에 강간을 당하듯 찌그러져 있는 사진을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생각해보면 이것은 한국의 ‘공포지수’나 ‘불안지수’와 비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가 산만한 유럽 사람들이 자기 몸집이 겨우 들어갈 만한 차를 타고도 룰루랄라~즐거운 건, 그 사회가 그만큼 안정되었다는 증거는 아니었을까. 이게 순전 야매업자가 만든 처방전 같아도 어쩐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건 별 수 없다.
글 ㅣ 백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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